[심리학 산책 5] 설득의 심리학

2013. 6. 11. 00:25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심리학 산책'은 UX 디자이너를 위해 심리학 책들을 총 10회에 걸쳐서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연재 의도와 전체 책 목록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연재 소개] UX 디자이너가 읽어야할 심리학 책 10가지

설득의 심리학
-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 이현우 옮김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 by Robert Cialdini



UX 디자인 & 설득

UX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UX 디자인이란 사용성 개선과 어떻게 다른가요?'

어쩌면 사용성 개선이 여전히 UX 디자인의 가장 큰 역할인 게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사용성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죠. 설사 현업에서 지금은 사용성에 주로 매달리지만, 앞으로는 더욱 확장해갈 것이라는 방향에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UX 디자인이 다루는 범위가 사용성보다 넓다면, 사용성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중의 하나로 저는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들고 싶습니다. 사용성 개선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의 사용자 행동에 관심을 가지는 수단적인 것이라면, 그 다음은 사용자와 제품/서비스 제공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행동 변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수단으로서든 목적으로서든 '행동 변화'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존의 사용성과는 약간 다른 관점,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행동경제학에도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심리학 산책 세 번째 책이었던 '상식 밖의 경제학'에 보면 많은 사례가 나오죠. 의사 결정에 관련된 상황에서 작은 변화가 사람들의 선택을 크게 바꾸게 됩니다. 행동경제학의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책은 바로 베스트셀러 도서 '넛지'입니다. 제목의 단어 넛지가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고, 저자는 그 의미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개입'하고 싶다면 행동경제학을 잘 살펴보세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면,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싶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행동 변화를 위한 직접적인 방법, 즉 '설득'입니다. 이 책이 바로 설득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설득의 6가지 법칙

저자 치알디니 박사가 소개하는 설득의 법칙은 아래 6가지입니다. 각 법칙에 관련해서 예를 한 가지씩만 요약해 소개해 봅니다.

1. 상호성의 법칙
- 수년 전에 어떤 대학의 교수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선정하여,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보냈다. 그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얼마만큼의답장이 올까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양의 카드가 그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답신되었다. (p.51)

2. 일관성의 법칙
- 캘리포니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부자촌 집주인들을 대상으로 ‘캘리포니아를 아름답게 유지합시다’라는 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거절할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서명했다. 그리고 2주 뒤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이 ‘안전운행합시다’라는 공공간판을 그들의 정원에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간판은 크기도 엄청나게 클뿐만 아니라 모양새도 볼품없었으나 놀랍게도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동의했다. (p.127)

3. 사회적 증거의 법칙
- 스탠드 바의 바텐더들은 영업 시작 전에 팁을 담는 유리병에 미리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넣어둔다. 이렇게 바텐더에게 팁을 남기는 것이 적절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손님에게 의도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서이다. (p.181)

4. 호감의 법칙
- 펜실베니아 주의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74명의 남성 피의자들의 신체적 매력을 재판 초기에 측정한 후 얼마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들이 받은 판결 결과를 조사해 보았는데, 매력적인 피의자들의 무죄 선고율이 그렇지 않은 피의자들의 그것보다 2배나 높았다. 피의자의 신체적 매력에 기인한 이러한 편견은 남녀 배심원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p.237)

5. 권위의 법칙
- 한 실험에서 연구 조교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 서 있으라든지 등의 상식 밖의 지시를 하였다. 절반의 경우에는 평상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의 경우에는 청원경찰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청원경찰의 복장을 하고 있을 때, 지시의 내용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그의 지시에 더 많이 복종하였다. (p.315)

6. 희귀성의 법칙
- 단지 속의 초콜릿 과자의 맛을 평가하는 실험에서 단지에 10개가 들어 있는 경우보다 2개만 들어있는 경우에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처음에는 10개였다가 2개로 바뀐 경우에는 처음부터 2개였던 경우보다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p.353)


어떠신가요? 위 사례만 보고도 각 법칙을 이해하실 수 있으신가요? 대략의 느낌은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더 많은 사례, 그리고 그 아래 숨겨져 있는 심리학 원리들이 각 장에서 설명되어 있으니 직접 읽어보세요. 법칙들 사이에 특별한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흥미있는 것부터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단, 프롤로그가 있으니 그것은 먼저 읽으세요.

각 법칙에 대해서는 위에 소개한 것을 포함하여 많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연구를 위한 실험도 있고, 현실 속의 실제 사례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미국인이라 미국의 사례들이 대부분이고 시기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것들도 있습니다만, 비슷한 사례나 경험들을 현재의 한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기에 큰 이질감 없이 다가옵니다. 이 설득의 법칙들은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뜻일 겁니다.


설득의 법칙과 휴리스틱

심리학 산책에서 지난 달에 소개했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을 기억하십니까? 거기에서는 인간의 사고 체계가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두 가지로 되어 있다고 했었죠. 그리고 시스템 1의 의사결정 방법이 여러 가지 휴리스틱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설득의 심리학'에서 다루는 6가지 법칙을 가만히 살펴보면 휴리스틱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부유층에 속하는 관광객들은 터키옥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구매 결정에 있어서 '비싼 것 = 품질이 좋은 것'이라는 일반적 기준을, 즉 고정관념을 사용했던 것이다. ... (중략) ... 그들 관광객들이 비록 분명하게 의식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들은 보석 구입의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지름길'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30~31)
인지 심리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이 일상적인 판단에 적용하고 있는 의사결정의 지름길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 보여진다. '판단의 지침(Judgemental heuristics)'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의사결정의 지름길들은 '비싼 것 = 품질이 좋은 것'이라는 법칙과 거의 흡사하게 작용하고 있다. (p.33)

'지침'이라고 번역된 부분이 바로 Heuristics입니다. 원래의 뜻을 더 잘 드러내기로는 '의사 결정의 지름길'이라는 표현이 더 낫군요. 설득의 법칙들이 사람들에게 통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의사 결정 상황에서 '지름길'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 지름길은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자동적으로 동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설득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서 심리학의 여러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잘 들여다보면 여러 내용 사이의 공통점, 서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씩 찾게 되면서 심리학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가 한 단계 더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한 우리의 자세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의 상당수는 마케팅과 관련이 있습니다. 책 뒤표지에도 이런 평이 써 있더군요. "영업인들에게 이 책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가장 읽어봐야할 중요한 책이다." 어찌보면 마케팅이나 영업, 또는 직업적으로 설득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법칙들로 그들에게 설득당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법칙들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저자는 '불로소득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불로소득자들은 자신의 힘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우리들의 즉각적이고도 자동화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다양한 영향력 도구들의 힘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p.40)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우리들은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죠? 당연히, 그들에게 설득 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특히 그 설득의 원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우리들을 돕기 위해,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자기 방어전략' 부분을 따로 마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처방들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별적인 법칙에 대한 '방패'를 주는 것에 더해서, 저자는 더 큰 방어 방법, 아니 오히려 '반격'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가짜 즉석 인터뷰 광고를 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은 절대로 사지 말 것이며, 또한 우리가 그 광고에 대해 얼마나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제조업자에게 알려 즉각적으로 광고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 (중략) ... 한마디로, 보이코트, 위협, 대결, 검열, 일장 훈시 등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불로소득자들에게 보복해야 한다. (p384)
그 이유는 우선, 의사결정의 지름길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설득의 법칙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그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쓰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의사결정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모든 정보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의 의사결정은 최선의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원시적 방법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p.382)
우리는 설득의 기초 법칙들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계속하여 존재하기를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불로소득자들에 의해 설득의 기초 법칙들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갈수록 우리는 설득의 기초 법칙들을 불신하게 되어 결국은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도록 그냥 팔짱만 끼고 앉아서 구경할 수는 없다. (p.385)
그러나 이런 반격은 설득을 법칙을 활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나 나의 제안은 모든 설득 전문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반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름길 법칙에 의해 정당하게 행동하고 있는 설득 전문가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와 함께 효과적인 교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동반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지름길 정보를 위조하고 변조하고 또 현혹시키는 불로소득자들이다. (p.383)
저자가 제안한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불확실하지만, 지름길 법칙의 정당한/부당한 활용을 구분하는 관점과 부당한 활용에 대한 염려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UX 디자이너에게

UX 디자이너라면 일상 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 설득에 관한 사례가 있었을텐데, 이 책의 6가지 법칙으로 되짚어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대개 이 6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고, 아니면 여러 가지의 조합일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사례라면 저자인 치알디니 박사에게 메일을 써보세요. 다음 개정판에서 책에 소개될지도 모릅니다!

또 혹시 자신만의 설득 법칙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법칙이 너무 거창한 느낌이 든다면 작은 요령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UX 디자인을 하다 보면, 사용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보안을 위하여 사용자들에게 암호를 주기적으로 바꾸게 하거나 더 복잡한 규칙으로 설정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 같은 소셜 네트웍 서비스에서는 사용자의 프로파일 정보를 최대한 많이 입력하도록 하고 싶어 합니다. IT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디자인 문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사례, 또는 역으로 잘못 디자인된 사례들을 생각해 봅시다. 특히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했던 설득의 디자인 문제나 해결안이 있다면 댓글로 소개해 주세요. 다른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 중에서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이 책의 법칙들을 적용해 볼 수도 있겠죠? 이 책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설득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근본 원리를 이해했다면 UX 디자인 상황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UX 디자이너로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를 다시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설득의 상황을 이 책의 법칙으로 해석해 본다면?
- 나만의 설득 법칙 또는 설득 요령이 있다면?
- 설득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UX 디자인의 문제, 또는 해결안 사례가 어떤 것이 있을까?
- 이 책의 법칙을 설득이 필요한 UX 디자인 문제에 응용해 본다면?

[참고##심리학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