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UX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4편 - 베껴라, 더 대담하게 베껴야 중급이 된다.

2015. 9. 10. 07:50UI 가벼운 이야기
이 재용


거울 앞의 소녀 - 파벌로 피카소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창의성의 아이콘이랄 수 있는 피카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이 말을 피카소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많은 시인, 미술가, 작곡가 들이 반복하여 이야기했고, 특히 UX 분야에서도 혁신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가 이 말을 인용(1988)하였다는 것을 보면 의미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자세히 보기).

디자이너들 아니 모든 창작자들이 표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가운데, 예술의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된 사람들 혹은 놀라운 혁신가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신선하면서도 놀랍다. 그들이 이야기한 'steal'은 무슨 의미일까?


디자이너도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면서 같은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다. 지난 주에도 프로젝트에 관련된 회의를 하면서 우리 디자이너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


"그 기능은 A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도 될까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1. 왜 베끼면 안 되는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것을 분명히 하여야겠다. 우리는 창작자로서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애써서 생각해 낸 것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베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 대해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나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도 지킬 수 없다. 

디자인 회사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쓴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다른 사람/ 다른 회사가 디자인한 것과 매우 유사한 것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모르고 그랬다면 사과하고 회수해야하고, 알고 그랬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표절에 관하여 디자이너와 디자인 회사는 엄격한 자기 규정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2. 학습과 모방

그러나 초보자/입문자가 무언가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모방을 통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든 어떤 분야의 것을 디자인해보러 하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우선 가장 잘 만든 것을 모아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화면 기획이든 시각 디자인이든 남들이 잘 만든 것을 유심히 보면 그 가운데서 배울 것이 많은 건 당연하다.


단순히 유심히 보는 것 보다, 그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고, 자기 스스로 모방하여 그려 보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원래 베끼려는 대상을 보고 그대로 그리면 안 되고, 대상을 잊은 채 스스로 그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례 학습 말고, 초보자들이 학습할 수 있는 것이 가이드라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거듭하여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꼼꼼히 학습해 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각 가이드라인은 그 가이드라인이 나온 시대적인 배경이 있는데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2015/05 - 신입 UI 디자이너를 위한 'UI 가이드라인 바로 배우기' 지침서


가이드라인 또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따라하는 것이라, 모방이라고 볼 수 있다. 피엑스디 같은 에이전시에서 3-4명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선임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따라하며 나머지를 완성하는 것도 역시 모방을 통한 학습이라고 볼 수 있다.


3. paraphrasing과 plagiarism

이러한 학습 방법을 영어로 표현하면 paraphrasing(패러프레이징, 바꾸어 말하기)이라고 한다. 

매우 좋은 문장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베껴 쓰기 보다는, 그 문장의 내용을 잘 기억한 다음, 자기 생각으로 바꾸어 (결국 논지나 표현의 일부는 비슷하겠으나) 써 보는 것이다. (paraphrasing의 장) 혹은 대화에서 상대방이 한 말을 내가 이해한바 대로, 즉 내 언어로 다시 표현하여 물어보는 것도 패러프레이징이라고 한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보았다면, 그걸 그대로 보면서 따라 그리거나, 기억이 선명할 때 그리지 말고, 어렴풋이 좋았던 기억 정도만 남을 때 그것을 따라 그려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체로 핵심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자기만의 느낌이 나오는 문장이나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 


미국 유학 시절, 미국 학교들은 보고서나 작품에서의 표절(plagiarism)을 매우 심각하게 다루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paraphrasing을 가르쳐 주었고, 그것이 굉장히 깊이 인상에 남았다.


4. 자기만의 개성 만들기

이렇게 초보의 딱지를 떼고 나면, 자기만의 개성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진다. 

paraphrasing을 넘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했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이, 창의성이란 어디선가 엉뚱한 것을 갑자기 생각해 내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창의성이란 합리적인 문제 해결에 가깝다. 그럼에도 창의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그 문제 해결을 극한대까지 밀어 붙여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정해 놓은 선을 살짝 넘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UX에서 로그인이란 절차에 따라 복잡해 질 수 밖에 없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새로운 방법이란 대개 전에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단, 로그인을 끝까지 미루어 맨 마지막에 하도록 하거나, 장치 아이디나 브라우저 아이디 같은 다른 개인확인 정보로 마치 로그인된 것처럼 구현해 회원 가입을 없애 버리거나, 어떤 안전 장치를 만들어 한 번 로그인하면 절대 다시는 로그인할 필요없는 방법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 자체로 매우 독창적인 해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그러한 철학을 모든 인터페이스에 적용시키면 자기만의, 혹은 그 서비스만의 독특한 독창성이나 개성이 생기게 된다.


아마존은 한 번 로그인하면 대개 모든 서비스를 다시 로그인할 필요없이 나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맨 마지막에 결제를 하려는 순간에만 다시 물어 본다. 페이스북은 내 브라우저에서 몇 년째 로그인 되어 있어도 안전에 의심이 없다. 이런 부분들은 각 회사의 사용자 경험에서 독창성을 만든다.


<광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전혀 다른 점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창의성이란, 대개 어떤 다른 분야나 다른 상황, 다른 산업에서 사용되던 것을 전혀 생각지 못 한 곳으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진을 펼쳐 놓고 찾는 경험을 음악 앱에서 앨범 자켓을 찾는 인터페이스로 가져 온다든지, 웹이나 PC에서만 사용 가능하던 것을 모바일로 가져 오는 것이다.


실제로 피엑스디에서 2000년대 중반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때, 당시 핸드폰은 성능이 좋아지고 있고, 사람들은 음성 통화에서 데이터 사용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PC에서 사용하던 몇 가지 콘트롤을 도입하여 설계를 하자 함께 참여하던 개발자들이 우리한테 '너무 모바일을 모른다'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개발자 분들이 디자인을 존중해 구현을 해 주고 나자 결과적으로 모바일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참신하고 새로운 UX가 나왔다. 단지 PC로부터 베끼기만 했는데도 말이다.


모바일 mMessenger를 만들 때도 그랬다. 당시 대부분의 컨설팅 회사들은 이동통신사에게 기존의 유선 메신저 (msn, AOL, ICQ, nate 메신저 등)를 빨리 모바일로 포팅하라고 권유한 반면, 피엑스디는 사용자 연구를 통해 모바일 네이티브 메신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SK텔레콤은 전략을 바꾸었고, 우리가 새로 만든 메신저는, 일부는 PC메신저에서, 일부는 모바일 메신저에서, 또 일부는 SMS에서 베껴 온 기능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자의 '불편'이라는 목표하에 철저히 유리한 부분을 선별하여 베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메신저를 써 본 사람들은 어디선가 베낀 것들의 잡탕이라는 느낌 보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메시징 경험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자기만의 독창성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 즉, 문제를 극한까지 밀고 가는 것과 서로 다른 점을 연결시키는 것 모두, 스티브 잡스가 자주 하는 말이고 애플 UX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례다. 


2014/06 - 스티브 잡스가 낙담한 UX 디자이너에게



5. 베껴라, 더 대담하게 베껴야 중급이 된다.

이제 위에 처음 이야기했던 피카소 이야기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자기 나름의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다른 경쟁사 혹은 남이 한 것을 보고 그대로 구현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sts steal.


여기서 copy와 steal의 차이는 '나'라는 주체가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정말 문제의 핵심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베껴올 만한 것을 보았다면, 냉큼 베껴야 한다. 누가 봐도 뻔한 것을, 베낄만한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점을 연결하듯이 완전히 다른 상황, 다른 산업에 있던 것을 과감히 가져오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역시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가져 오면서도, 그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가져 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서 가져온 것이 어울리지 않고 잡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듯이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되어 버리게 만들어야 한다. 


애플 제품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애플처럼 해 주세요' 라고 주문을 하고, 또 실제로 어떤 회사들은 열심히 애플 제품을 베낀다. 그런데도 왜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대개 애플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깊이 이해하지 못 하고 베끼거나, 전체 철학을 베끼고 따라하는 대신, 아주 일부분만을 맥락없이 베끼기 때문에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베끼는 사람들의 문제는 근본 철학을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차이지만 핵심적인 것을 놓치거나, 깊은 고민 끝에 뺀 기능을 자랑스럽게 넣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애플이 제공하는 것이 다~되고, 추가로 이것도 된다!라면서 자랑스러워하지만, 사실 애플을 애플답게 만든 건, 바로 그것을 추가하지 않았다는 점일 경우가 많다.


만약 이제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어디선가 무엇을 가져와도 내 철학 안에서 그걸 녹여 완성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더 이상 초급처럼 다른 것을 가져오는데 대해 겁내지 말고, 다른 서비스에서 잘 된 부분을 과감하게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전제가 이루어졌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서 베껴왔는지도 모를 것이다. 혹은 알더라도, 거기서 베껴 왔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베껴 온 것이 이 서비스와 찰떡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베껴라, 더욱 대담하게 베껴야 중급이 된다.



[참고##프로젝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