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 )을 위해 디자인할까?' 세미나 참여 후기

2021. 7. 26. 07:50UX 가벼운 이야기
유진 이

  지난 7월 10일 토요일 노트폴리오에서 주관한 세미나 '우리는 (   )을 위해 디자인할까?'에 참여했습니다.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세 명의 디자이너(우디, 최안나, 신인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 세미나 중 인상 깊었던 세션과 함께 거듭 반문하게 된 몇 가지 질문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함께 고민해주세요!

 

시작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세미나 후기를 전달하기에 앞서, 참여 동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듣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강연 개요에 소개된 '주제 의식'이었습니다. 

-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 지속가능한 디자인
- 디자인 윤리

 

더불어 위 주제 의식에 대한 소개 중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략)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의 노력은 다시금 돌아와 디자이너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어쩌면 디자인을, 더 나아가 UX 디자인을 선택한 가장 첫 번째 마음가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으나, 묵직한 질문을 두 손 가득 들고나온 시간이었습니다.

 


 

Session 1. 디지털 디자인 시 가져야 할 윤리의식과 태도

 첫 번째 세션은 디지털 디자인 시 가져야 할 윤리의식을 주제로 프로덕트 디자이너 우디님과 함께 했습니다. 우디 디자이너는 디자인 윤리 커뮤니티인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 도구란 무엇일까? 

 ‘도구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세션을 시작했는데요, 도구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일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우디 디자이너는 도구란 사용하고자 하는 주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더불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도구의 의미가 변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과거 도구는 사용자의 행위 목적에 따라 의미가 정의되는 ‘수동적’ 측면이 강했습니다. 자전거는 물리적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자의 ‘쓰임’을 기다리는 수동적 특성을 가집니다. 시대가 변할수록 도구는 반대로 사용자의 행동에 먼저 영향을 주곤 하는데요. 스마트폰 내의 SNS 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사용자에게 말을 걸어오곤 합니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기술적 특이점이 다가오면서, 때때로 인간의 취약성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취약성은 무엇일까요? 

 

2. 인간의 인지적 취약점 

 인간의 취약성을 언급하기 전에 아래 그림을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

https://www.ildaro.com/8083

 미국 심리학자 폴 매클린은 인간의 뇌는 삼위일체로 구성된다고 말했는데요. 이성의 뇌(영장류), 감정의 뇌(포유류) 그리고 생명 유지의 뇌(파충류)로 구성됩니다. 인간은 본능적 판단에 따른 감정의 변화, 최종적으로는 여러 정보를 조합하여 논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위 그림과 같이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인지 과정을 밟습니다. 자동 시스템(휴리스틱)과 숙고 시스템인데요, 여기서 자동 시스템은 위에서 언급한 ‘생명 유지의 뇌’ 영역에 처리합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숙고 시스템보다는 자동 시스템을 일상에서 빈번히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인지적 구두쇠라는 취약점을 갖습니다. 

 인지적 구두쇠라는 취약점을 활용한 사례는 UX/UI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

 해당 개념을 언급하기에 앞서 브라이언 완싱크의 수프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실험은 A) 일반 접시와 B) ’밑 빠진’ 접시에 수프를 계속해서 채운 두 집단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언제 수프 먹기를 멈추는지 확인했는데요. A 집단의 참가자는 약 266cc를 먹었으나, B 집단 참가자는 평균 440cc를 먹었습니다. 심지어 접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수프 때문에 자신이 그만큼의 양을 먹었음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가 먹은 음식의 양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시각적’인 측면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무의식적으로’ 먹게 되는 음식의 양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눈’입니다. 

위 같은 인지적 취약점을 활용한 사례는 SNS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Load more를 누르면 끝없이 제공되는 무한 스크롤이 이에 해당합니다. 무한 스크롤로 사용자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던 초기 의도와 다르게, SNS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대두되곤 하는데요. 해당 기능을 만든 ‘아자 래스킨’은 정지 신호를 복원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용자의 원활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무한 스크롤을 개발했지만, 결과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 아자 래스킨



FOMO(Fear Of Missing Out) 

 FOMO는 어떤 경험이나 정보에서 나만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2000년 마케팅 전략가 댄 허먼(Dan Herman)이 제품의 공급량을 일부러 줄여 소비자들을 조급하게 만드는 마케팅으로 사용했던 방법이라고 하는데요. 오늘날의 '매진 임박' '한정 수량' 등의 전략 사례에 해당합니다. SNS가 확산되면서 포모 현상이 더욱 부각됐습니다. 남들보다 정보 노출에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입니다. 

 

사회적 승인(Social Proof)

 사회적 승인이라는 개념은 ‘어떤 의견에 대한 유효성’을 군중 속에서 찾으려는 심리를 말합니다. 

예. 30일 무료 체험해보기

 

 우디 디자이너는 위 같은 인지적 취약점을 UX 디자인에 잘 녹여낸다면 사용자의 선택지를 줄여,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3. 다크 넛지 패턴 

 인간의 인지적 취약점을 긍정적으로 녹여낸 기능이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바로 ‘다크 넛지’ 패턴인데요, 팔꿈치로 툭툭 옆구리를 찌르듯 소비자의 비합리적인 구매를 유도하는 상술을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지금부터 ‘다크 넛지’ 패턴에 해당하는 사례를 알아보려 합니다. 

위장 광고 (Disguised Ads) 

 대표적인 다크 패턴으로 콘텐츠나 내비게이션으로 위장한 광고에 해당합니다.

미끼와 스위치 (Bait and Switch) 

 사용자가 의도를 가지고 어떤 옵션을 선택하려 하지만 의도와 다른 일이 발생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부끄러운 선택 (Confirshaming)

 사용자에게 제한된 옵션 중 특정 선택에 한해 죄책감을 주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친구 스팸 (Friend Spam)

 이메일에서 자주 보이는 다크 패턴으로, 친구가 당신을 특정 서비스에 초대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에 해당합니다. 

개인정보 쥬커링 (Privacy zuckering)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정보 공유에 동의하는 팝업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기를 클릭하면 매우 복잡한 약관으로 이동합니다. 

 

4. 마무리하며

 인지적 취약점을 활용한 여러 사례를 취합하며, 우디 디자이너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 우리는 디자인 목표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까? 
- 실무에 윤리를 고려한 프로세스를 넣을 수 있을까? 

 특히 후자의 경우 ‘긱 노동자’의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배달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며, 시장 이면에 있던 ‘긱 노동자’의 위험한 노동 환경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가 단순히 사용자(User)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 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이해 관계자 입장을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더 나은 이란 의미는 무엇인가요?”
- 우디 - 




Session 2.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가까이 디자인 다시 하기 

 세 번째 세션은 신인아 디자이너의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가까이 디자인 다시 하기’라는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신인아 디자이너는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 풍경’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많은 지지와 연대를 받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션을 시작하며, 실무를 하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오늘의 풍경 : https://helloinah.github.io/
 

오늘의풍경 | Scenery of Today

원룸스터디클럽은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태국, 싱가폴 이상 7개 아시아 국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지난 일본 방문에서 만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큐레이팅

helloinah.github.io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 : https://fdsc.kr/
 

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fdsc.kr



1. 디자인에 대한 인식 

 신인아 디자이너는 ‘앎’의 의미에 대해 두 가지 갈래로 언급했습니다. 

1.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앎, 나를 성장시키는 앎
   예. 대학 교육, 개인적 공부, 실무 경험에서 얻은 디자인 지식
2. 내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면서 오는 앎
   예. 페미니즘 ‘강남역 살인 사건’ 

 특히 두 번째 의미의 앎에 대해 더욱 생각을 뻗어 나갔는데요. 디자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디자인 지식이라 생각지 못했던 경험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 폐쇄적 문화 - 천재성의 신화 그리고 위계적 구도가 그 예입니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직접 맞닿아 있는 디자인 시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이와 관련되어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미술계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구조적으로 배제해왔는가에 대해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디자인 역사에서도 그 많던 여성 디자이너는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반문할 수 있습니다. 

 

2. FDSC의 시작 

 신인아 디자이너는 ‘앎’의 인식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디자인에 대해 다시 정의했습니다. 페미니즘 인식론에 기반한 디자인 담론, 디자인을 퀴어링하기 그리고 디자인을 탈식민화하기 등 여러 측면에서 디자인을 다시 조명했습니다. 특히 문제의 뿌리를 파악하고, 그 근원과 구조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여러 갈래에서 디자인에 대한 담론을 이어나가며 신인아 디자이너는 두 가지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첫 번째로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자는 것인데요.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이슈의 본질에 대한 주목보다는 이슈와 관련된 디자인 포스터를 만들어 올리기 급급한 자기 PR의 디자인 세계에 문제점을 언급했습니다. 흔히 디자이너는 곧 ‘문제 해결자’라고 생각하지만, 이 같은 경우가 과연 사회적 이슈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더불어, 디자인 올림픽에서 벗어나자는 결심입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타 디자이너가 되길 원하며 그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이에 따라 디자인 역사가 마치 스포츠 역사와 유사하게 스타 디자이너를 위주로 한 위계 중심적인 서사로 쓰여 왔습니다. 신인아 디자이너는 기존 주류 문화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경쟁을 장려한다는 점에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 : https://fdsc.kr/
 

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fdsc.kr

 디자인에 대한 재정의 과정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결과로 이어졌는데요. 디자인의 경쟁적 서사에 건강한 문화를 불러오기 위해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을 시작했습니다. 디자인의 역사에서 혹은 디자인과 맞닿는 일상에서 그동안 놓쳤던 것을 다시 살펴보고,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를 통해 가치의 전환을 이뤄내는 디자인 과정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더불어 디자인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가치있는 디자인을 위해 우리가 어떤 과정을 밟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무리하는 글

 매일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지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일상과 분리된 개별 영역이 아닌,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유기적인 존재로 느껴지곤 합니다. ‘나’의 신념이 곧 ‘디자인’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디자인’의 가치가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들으며, 본인의 신념을 정직하게 밟아가는 디자이너의 용기와 이면의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디자이너로서 수없이 거듭되는 자기 의심과 자기 객관화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  )을 위해 디자인할까?’ 질문으로 돌아가 다시금 시작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