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산책 1]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13. 1. 29. 01:04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심리학 산책'은 UX 디자이너를 위해 심리학 책들을 총 10회에 걸쳐서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연재 의도와 전체 책 목록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연재 소개] UX 디자이너가 읽어야할 심리학 책 10가지


책 표지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 로렌 슬레이터 지음 / 조증열 옮김

Opening Skinner's Box: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 by Lauren Slater


심리학이란?

심리학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독심술' 같은 것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하면 '지금 내 생각을 맞춰봐~'라고 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계시거든요. 모두가 심리학을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겠지만, 어떤 학문인지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은 심리학이 어떤 주제들을 다루는 학문인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책입니다. 심리학을 간단하게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보통 사람들에게 느낌이 잘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이 다루는 주요한 주제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기 더 쉽죠. 이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지 심리학, 학습 심리학, 사회 심리학, 발달 심리학, 임상 심리학 등 심리학의 주요 분야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각 장의 주제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 B. F. 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에 관한 행동주의 이론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 달리와 라타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
5. 마음 잠재우는 법 -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6.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에 들어가기 -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7.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8.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9. 기억력 주식회사 - 기억 메커니즘을 밝혀낸 에릭 칸델의 해삼 실험
10. 드릴로 뇌를 뚫다 -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 치료

여러분들이 생각하셨던 심리학과 비슷한가요? 목차만으로는 아직 잘 모르시겠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심리학이 어떤 문제들을 다루는 학문인지 대략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각 장이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각 장에서 다루는 실험의 내용과 결과,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의미를 꼭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어떤 분야이든 그러하듯 현대의 심리학이 한 걸음씩 크게 나아갈 때에는 기존의 고정 관념들을 깨뜨리는 연구가 있었고, 이 책에 실린 실험 10가지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했던 연구들이니까요.

가령 스키너가 등장하여 '인간의 행동은 보상을 받으면 강화되고, 처벌을 받으면 소멸된다'는 행동주의 이론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근간을 이루는 유심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 (옮긴이의 말 - p. 338)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이어서 많은 논쟁과 후속 연구를 이끌어냈고, 이제는 심리학 개론 교과서에 실리는 그런 실험들입니다. 이 실험들을 이해하고 나면 이후에 관련 분야의 다른 연구 결과나 이론들을 이해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심리학의 실험

실험이라는 연구 방법이 심리학의 발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게 해 주는 것이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 심리학 분야는 본질적으로 자연 과학적인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따라서 대상에 대해 가설을 설정하고 그것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론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 핵심 방법론이 바로 실험이죠.

이 책에서 각 장은 주제가 되는 실험이 어떤 의문과 가설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과정으로 실행되었는지,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이 어떤 심리학적, 사회적 함의를 갖는지, 그 이후 어떤 이론으로 발전했는지까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험 하나로 이론이 정립되지는 않습니다. 각 실험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으며, 특히 혁신적인 실험일수록 그렇죠. 그래서 이 책에서도 각 실험에 대한 반론과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6장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에 들어가기'에는 로젠한의 연구에 대한 반론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젠한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발표되자 흥미진진하고 예리한 논쟁이 담긴 현란한 문구의 편지들이 대거 쏟아졌다.
(중략)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아래의 것이다.

만일 내가 피를 한 통 들이마신 후 그 사실을 숨기고 피를 토하며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다면 응급실 직원들은 당연히 내가 소화성 궤양을 앓는다고 판단하고 그에 맞게 치료를 해 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학이 진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고 설득력 있게 논쟁할 수 있을까? (p. 189~190)

심리학에서 실험이라는 방법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심리학 분야에서 '외적 타당도 external validity'라 불리는 이 논점은 실험 심리학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벽이 새하얀 깔끔한 과학 실험실 안에서 나타난 행위가 실험실 밖에서 반복되지 못한다면 그 연구 결과를 증명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81)

각 실험에 대해서, 또 실험이라는 방법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이렇게 상반된 의견을 모두 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 점입니다.

이 책의 각 장에서는 대표적인 실험 몇 가지씩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하나의 이론이 만들어진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 책에 실렸거나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기념비적인' 실험에는 수많은 후속 실험이 따라붙기 마련이고, 그를 통한 검증과 학문적 논박을 통해서 이론으로 정립되어 왔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또, 실험이라는 방법이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서도 심리학자들은 잘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완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토리텔링

다른 심리학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 책만의 미덕은 바로 스토리텔링에 있습니다. 대개의 심리학 책들은 실험의 내용과 결과만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실험의 상황을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실험 당시나 그 이후의 연구자와 참가자들의 개인적인 심리 상태까지 파고들고 있어서 마치 소설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독자가 직접 실험에 참가하는 느낌을 주기까지 합니다.

어느새 전기 충격은 115볼트까지 올라가 있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는 자신의 손을 쳐다본다. 버튼을 누르자 마이크로폰을 통해 그의 비명이 들린다.
"날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나를 나가게 해달라고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날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당신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겨드랑이 밑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다. 당신이 실험자를 향해 말한다.
"됐어요. 여기서 그만두어야 해요! 저 사람이 나가고 싶어해요."
하지만 실험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p.56)

제가 본 심리학 책들 중에서 큰따옴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덕분에, 딱딱하거나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실험 중심의 기초 심리학의 중요한 주제들을 흥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묘사가 생생하지만 상당 부분은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이기 때문에 읽으실 때 자칫 사실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하시면 곤란하니까요. 사람들의 인터뷰의 경우도 주의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이 개인의 견해일 뿐만 아니라, 기억에 의존한 부분은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기억의 부정확성에 대해서는 이 책의 8장을 보세요. 또, 다음에 소개될 '심리학 산책'의 다른 책도 참고하세요.)

실험의 내용과 이론을 먼저 배운 심리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절히 구분해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과 여러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에만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연구 자체의 내용과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도 좀 더 신경쓰시면 좋겠습니다.


UX 디자이너에게

위 소개를 보면, 아니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책의 내용을 UX 디자인에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실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첫번째로 정할 때에도 직접적인 응용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가깝게, 흥미 있게 느끼게 되는 것이 우선의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뿐만은 아닙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시면 UX 디자인을 하는 데에 참고할만한 점들을 더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읽는 사람 각자의 배경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죠.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무언가를 찾으시면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시죠.


[참고##심리학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