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산책 8] 생각의 지도

2013. 10. 18. 00:15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심리학 산책'은 UX 디자이너를 위해 심리학 책들을 총 10회에 걸쳐서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연재 의도와 전체 책 목록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연재 소개] UX 디자이너가 읽어야할 심리학 책 10가지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 리처드 니스벳 지음 / 최인철 옮김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 by Richard E. Nisbett



생각의 지도?

UX에 관련된 문제 중의 하나가 문화권에 따른 차이입니다. 해외까지 시장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에 근무하시는 분이라면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실 겁니다.

"미국의 사용자들은 우리나라 사용자들과 같은가? 유럽은 또 어떨까?" 

특히 UX 디자인, 상품/서비스 기획, 마케팅 등 고객에 대한 연구나 조사가 중요한 업무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그러하실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라면 현지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게 되죠. 그런 식으로 어떤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문화권 간의 차이점들은 사용자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에 일반적인 공통점은 없을까요? 또,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미국 대학의 심리학 교수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미국의 유명 대학에는 세계 여러 나라 출신 학생들이 모여들죠. 니스벳 교수에게도 그런 학생들이 있었는데, 언젠가 중국 출신 학생과 연구를 진행하다가 동서양간 사고 차이에 대한  지적을 그 학생에게서 듣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그와 그 제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수행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 역시 심리학 교수인데 저자의 제자이고, 그의 연구도 책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심리학 분야의 보편성 & 문화적 차이

기초 심리학은 인간이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 아닌,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성'이 있는 원리를 찾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심리학 산책'에서 소개했던 책들의 내용도 대체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든가 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만나본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도 동일 주제에 대해서 여러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구를 비교 문화 연구(cross-cutural research)라고 합니다. 대개 어떤 연구 주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게 되면 같은 연구를 다른 문화권에서 수행하는 비교 문화 연구가 뒤따르게 되고, 그를 통해서 문화권을 뛰어 넘는 보편성이 있는지 확인을 거치게 되죠. 이 책은 특히 세상과 타인, 자신을 대해 인식하고 사고하는 과정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찾아 낸 비교 문화 연구들을 잘 모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양 vs 서양

이 책에서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 차이 내용을 5개 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요한 개념을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동양 서양 
 2장 (자기 개념) 더불어 사는 삶
고맥락
집합주의적 사회
상호의존성
타협
홀로 사는 삶
저맥락
개인주의적 사회
독립성
논쟁
 3장 (세상 지각) 전체를 보는
종합
장 의존적
세상에 적응하려는
순환론
부분을 보는
분석
장 독립적
세상을 통제하려는
직선론
 4장 (인과론) 상황론
상황 귀인
복잡성 추구
본성론
성격 귀인
단순성 추구
 5장 (언어, 분류)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계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범주, 사물
 6장 (진리 탐구) 경험
Both/And 지향
논리
Either/Or 지향

이렇게 단어들만 보니 추상적이어서 느낌이 잘 오지 않으시죠?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세요.


(질문) 위  그림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물을 위쪽의 A와 B 중 하나와 묶는다면?

이 질문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에서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미국의 어린이들은 같은 분류 체계에 속하는 소와 닭을 하나로 묶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어린이들은 '관계'에 근거한 방식을 선호했다. 즉, 소와 풀을 하나로 묶었는데 그 이유는 '소가 풀을 먹기 때문이다'라는 관계적 이유 때문이었다. (p.137)
어린이뿐만 아니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가 이런 데에서도 나타나다니 재미 있죠? 이 내용은 책 5장, '관계'와 '범주'에 의한 분류의 차이에 대한 부분에서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른 개념들에 대해서도 실제 실험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읽어보시면 흥미로운 내용들을 곳곳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차이의 상대성

위 표에서 보듯, 이 책은 전반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대조하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이점을 잘 드러내기 위한 강조일 뿐, 실제로는 단순히 칼로 자르는 것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어떤 측면의 경향성이 좀 더 강한가 정도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죠.
물론 독립성이냐 상호의존성이냐는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어떤 개인에게든 두 가지 속성이 혼재되어 있다.  (p. 70)
게다가, 동양이라고 모두 똑같지 않고, 서양이라고 모두 같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과 다름 없는 것처럼 대하면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죠. 그럼에도 우리는 서양이라고 하면 미국과 유럽을 함께 가리키면서 그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북미 국가들(미국, 캐나다)과 유럽 대륙 국가들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있고, 이 책에서도 그런 점이 연구 결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럽 대륙 사람들의 태도나 가치관은 동양과 서양의 중간쯤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지적 전통 또한 미국이나 영국의 전통보다는 동양적인 ‘종합적' 색채를 상대적으로 띠고 있다. (p. 86)
유럽도 각 국가마다, 또 연구 주제마다 약간씩 다른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마세요.


차이의 기원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생태 환경의 차이가 경제, 사회 구조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이 주의, 형이상학, 인식론을 거쳐 사고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기는 약간 어려워서 여기에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읽어보시면 한편 이해되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 과정으로 사고 방식의 차이가 만들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역사적 고찰과 상관 관계 연구 등으로 설명하고 있을뿐, 좀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근거를 볼 수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 점은 아쉽습니다만 실험 등의 방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위의 설명은 동서양의 차이가 한 문화권 전반에 걸처서 나타나게 되는 측면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각 개인에게는 그런 차이가 어떻게 전달될까요? 사회의 여러 요소가 개인들의 사고 과정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효과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화의 과정에서 개개인에게 축적되게 됩니다.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고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71)
이 연구는 이러한 귀인의 문화적 차이가 사회화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증명해 보였다. 밀러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는 문화에 따른 귀인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차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p. 112)
그런데, 책을 읽다가 몇 군데에서 매우 어린 나이 때부터 차이가 나타나는 사례들(4살과 6살 아이들, p.89 등)도 소개되고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선천적인 요인도 있는 것인가 했습니다만 이 책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양육과 사회화에 의한 결과라는 설명인데요, 경우에 따라서는 생각보다 빠른 시기부터 영향을 미치는 모양입니다.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훈련은 아이들의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다른 침대에 잠을 재우지만 이는 동양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p. 61)

UX와 문화 차이

여러 제품과 서비스의 UX 디자인, 그리고 그 디자인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응도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들을 한번 살펴보세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만들어진 것도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 중에서 사용하다가 문화적인 차이로 뭔가 어색하거나 불편한 경험을 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있다면 그러한 차이를 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개념들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직간접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또, 그러한 문제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해외를 대상으로 UX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할 때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는 데에 이 책의 개념들을 활용할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현업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 실제로 해외 사용자 조사를 진행한 경험, 그에 따라 디자인 의사 결정을 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사례를 다시 해석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편, 문화적 차이의 심리적 매커니즘을 점화로서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UX 디자이너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한 사고 방식의 차이가 문화권에 따라 완전히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도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험실 내에서 아주 간단한 점화 기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사회적 지향(상호의존적 혹은 독립적)을 변화시키면, 그 결과가 사고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발견했다. (p.229)


이 원리를 활용한다면 우리가 UX 디자인을 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사용자의 사고 과정을 어느 쪽으로 유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사용자들의 문화적 차이를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필요한 있는 디자인 상황이 있을지, 있다면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UX 디자이너로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를 다시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생각해 볼 문제

-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서 불편한 UX 디자인 사례있다면? 그 이유를 이 책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 UX 디자인의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결과 성공/실패 여부와 그 이유는?
- 사용자의 사고 방식을 UX 디자인을 통해서 유도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 필요한 디자인 문제가 있을까?


[참고##심리학 산책##]